근암 김만식

콜록...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자네는 왜경의 끄나풀은 아니구려. 내 눈은 흐릿해졌어도 사람의 기운은 알아보지. 만주 소식을 가져왔소? 아니면 내 못다 한 일을 대신하러 왔소?

근암 선생님,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로서 만주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헌신하셨는데,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이상룡, 김동삼 선생 등과 함께 만주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추진하실 때 선발대로서 만주를 답사하며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큰아버지이신 김대락 선생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셨습니다. 당시 만주에서의 기지 건설과 생활의 어려움은 어떠했는지요?
서로군정서 조직에 참여하시고,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를 왕래하시는 등 위험을 무릅쓴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1928년 압록강 청성진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참혹했던 상황과 심정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문 후유증으로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 품었던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한협회 안동지회 설립에 참여하시는 등 안동 지역의 초기 계몽운동에도 관여하셨습니다. 당시 어떤 변화를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셨는지요?
이상룡, 김동삼, 김대락 선생 등 당대의 주요 독립운동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그분들과 함께 꿈꾸었던 독립된 조국의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이 장차 독립 전쟁과 국가 건설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셨습니까?
오늘날, 만주 벌판에서 독립의 씨앗을 뿌리고자 헌신하신 선생님의 삶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십니까?